안녕하십니까.
한결에스피 이주환입니다.
새해가 밝았습니다.
깊은 곳으로 침잠하여 혼자만의 시간을 갖아야 하는 시간이 찾아 온 것 같습니다.
시간이라는 것에 끝과 시작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때 느끼는 감정은 다들 다르지만 가슴속에서 뭉클한 것을 느끼는 것은 다 같지 않나 싶습니다.
많은 분들이 마감 잘 했냐는 말씀들을 해 주셨습니다. 뭐라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다가 문득 느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마감이라는 것은 시간이 해주는 것이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는... ^^
12월 한 달 가끔씩만 맑은 정신이었던 것 같아 글을 끄적여 놓고 저장하고를 반복하다보니까 짧은 글이 여러 개가 되었습니다.
너무 글이 길어질 것 같아 토막글 몇 개를 보내드릴 까 합니다. 4번에 나눠 읽으셔도... ^^
1. 그리운 한 분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날이면 항상 생각나는 글이 있습니다.
단 몇 줄의 글이지만 깊고 넓은 곳에 있게 해 줄 수 있는 글인 것 같습니다.
"모든 비바람에도 끄떡않던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꺽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꺽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골짝 저골짝에서 나무들이 꺽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 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
어느 하나 애정어린 눈길을 주지 않은 단어가 없으며, 어떻게 이런 평이한 문장에서 감성 가득한 느낌을 전달할 수 있는지, 정말 이분의 글을 읽고 있으면 경외라는 단어만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단언컨대 깊은 성찰이 없다면 이런 글은 절대 써질 수 없습니다. 법정스님의 글입니다. 사물을 보는 이분의 시각은 감동 이상의 무엇을 넘어서 있는 것 같습니다. 저를 아시는 많은 분들이 '너는 사장감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실 때 이 글을 되뇌인 적이 몇 번 있습니다. 내려앉은 눈이 바람에 떨어지더라도 언젠가는 가지를 꺾고마는 눈처럼 차근차근 해나가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말이죠. 아~~놔, 언제 꺾이는거야~~ ^^
2. 그리운 또 한 분
작년 12월 눈이 많이 내리던 날 굳이 만년필가게에 가서 저렴한 만년필을 하나 구입하였습니다.
잉크를 넣는 그 일련의 과정이 귀찮지만 종이 위에 글이 써내려져 갈 때의 사각거리는 소리와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리영희 선생님께서 간경화로 고생하시다가 타계하셨습니다.
초라한 중년이 된 저이지만 예전 혈기왕성했던 저에게 삶의 잣대를 주셨던 그 분이 편히 가신 그날을 기리기 위해서 만년필을 구입하였습니다.
글은 피로 쓰는 것이라던 그 분은 잉크를 넣으시면서 피를 넣는다는 생각을 하셨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년필이 가장 사치품이라고 하셨던 그 분의 사진과 글을 읽고 있으면 제 모습이 왜 이렇게 왜소하고 초라해 지는지고 죄인이라는 생각이 드는지…
저도 사업계획을 만년필로 써 봐야 겠습니다.
아십니까? 한결에스피 올해의 사업계획은 피로 쓰여 진다는 것을... ^^
3. 회사 주변 풍경
재작년 처음 회사를 만들 즈음 회사와 제일 가까운 슈퍼마켓에서 담배를 사곤 했었습니다. 파라솔도 두 개가 있어 가장 저렴한 캔커피도 가끔 직원들이랑 마시면서 잡담도 나누곤 했었습니다. 야채도 많이 사다가 조금씩 나눠 팔기도 하고, 콩나물도 키워 팔고, 삼겹살, 과일, 두부 등 멀리서 장을 보지 않아도 그곳에서 주민들이 장을 볼 수 있도록 그러니까 동네 주민들의 요구에 맞추어 상품을 파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러다가 작년 초에 모퉁이를 돌자마자 24시간 편의점이 들어섰습니다. 그 후 그 슈퍼는 아이템에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떡볶이, 순대, 오뎅, 삶은 계란 등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파라솔에는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막걸리나 맥주를 드시는 모습이 종종 연출되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름 흐믓했습니다. 상황의 변화에 맞추어 틈새시장을 파고드는 모습에 박수를 쳐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파라솔에 앉아 있기가 약간 추운 듯 한 늦가을에 50미터도 못되는 곳에 진로할인마트가 생겨났습니다. 만국기를 걸어놓은 그 곳을 지나면서 가장 먼저 부부가 운영하는 슈퍼마켓이 떠오르더군요. 담배 한 갑을 사더라도 미소를 잃지 않으셨던 아주머니의 모습은 이제 사라진 것 같습니다. 며칠 전 담배를 사러 갔는데 가게가 횡하게 비어있는 모습을 애써 외면하고 아저씨한테 제가 피우는 담배를 달라고 했더니 이제는 담배를 팔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냥 과자 몇 봉지랑 캔커피를 사들고 나왔습니다.
그날 기분이 너무 착찹해서 귀농했다가 지금은 어느 공기업체 경비를 하고 있는 친구를 만나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했습니다. SSM을 기획했던 대기업 직원들도 회사를 나가게 되면 SSM 주변에 있는 슈퍼마켓 주인들이나 자기나 별 다를 바 없을 처지에 놓일 수 있을텐데, 그들은 자신의 미래를 스스로 처참하게 짓밟는 것은 아닌지... 조직이 아닌 개인 일상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재정의 한계로는 아무리 변화를 시도하려고 해도 되는게 있고 되지 않는게 있는 것은 아닌지...
친구랑 슈퍼마켓 부부를 위해 건배를 하다가 기분이 센치해져서인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앞이 흐려지더군요.
그날 친구와 저는 진심으로 그 부부의 행복을 위해 건배를 했습니다.
요즘도 가끔 그 부부를 위해 화살기도를 합니다. 동네슈퍼여, 그야말로 슈퍼해지시길... ^^
4. 새해 다짐
우리들의 찬란했던 20대 초반을 기억하시는지요.
불안한 미래를 떨쳐내고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행동했던 그 날들을 말입니다.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20여년이 되어가고 있는 즈음에 저는 서 있습니다.
저는 이대로 가다가는 5년 후(셋째가 다섯살...)에는 진짜 별 볼일 없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한 미래를 떨쳐버리기로 했습니다.
정말 즐거운 것을 위해 다시 한 번 열정을 불사르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다시 한 번 겪어볼 것을 다짐해 봤습니다.
직장생활한 지 20년 되는 해에 진정한 의미의 성인식을 준비하자는 다짐을 하면서 4344년 새해를 맞이하기로 하였습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를 의식하지 않고 진정한 즐거움을 찾아가시는 한 해 되시길...
신묘년 3일 째
이주환 올림
